제 16대 대통령 노무현, 그의 이야기.
소년데드풀
·2021. 5. 23. 07:18
노무현은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전교회장을 하였던,
그러한 학생이였다.
나서기 좋아하고, 시사에 관심이 많은 그러한 학생이였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때 이승만 글짓기 대회가 열리자,
저항의 의미로 백지동맹을 주도하였다.
그리하여 정학을 받기까지하였다.
이후 부산 상고를 졸업한 이후, 농협 입사시험을 쳤으나, 낙방하였고.
막노동일을 하며, 사법고시 준비를 하였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관되었으나,
7개월만에 판사직을 사임하였다.
이유는 당시 경제적 문제가 심각했고,
생계를 위해서는 변호사를 하는것이
생계에 도움이 되기때문이였다.
그는 변호사가 되고선, 간간히 민/형사 사건을 맡다가,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가 되자 생활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그가 만일 지속적으로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였다면,
그는 부족한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살수있었을것이다.
그와중 김광일 변호사에게 부림사건 담당 변호인을 맡게되는데,
이것은 그의 인생의 큰 변환점이된다.
처음에는 젊은 학생들의 실수겠거니, 했지만.
그들의 몸에 남아있는 고문흔적을 보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그렇게 인권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그는 돈은 많이 벌지못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지킬수있는 노동인권변호사가 되어,
각종 노동자들의 사건을 무료, 혹은 적은돈만을 받아가면서
여러가지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러한 인권 변호사 활동중,
노무현은 김영삼의 제안으로 통일민주당에 입당, 국회의원이 된다.
그는 국민의 응어리진 감정들을 확 뚫어주는
시원한 입담으로 각종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로 올랐다.
그러나 그의 정치인생은 꽃길만 있지는 않았다.
당시 노무현은 3당 합당을 반대하며 통일 민주당을 탈당한다.
일명 "꼬마민주당"에 입당해 부총재와 대변인을 자처하며,
각종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소수정당인터라, 노무현에게는 힘든일이었다.
이후 김대중에게 입당제의를 받고,
민주당에 입당하게된다.
그는 그렇게 부산 동구,부산광역시장 선거에서 낙선을 거듭한다.
당에서 마련해준 종로 선거구에서 본선거에서는 졌고,
재보궐 선거에서 겨우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종로 지역구에서 안일하게
탄탄대로 정치적 길을 걸을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 지역주의에 맞섰다,
부산 북,강서 을 그는 35.2% 낙선했다.
노무현은 이후 김대중 정부시절 해수부장관을 지낸다.
당시 탈권위주의와 인터넷 중심의 해수부장관은
딱딱하고 굳어있던 당시 해수부 공무원들에게는 파격적이었다.
당시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경선 레이스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때 노무현은 그닥 높은 지지율도 아니였고,
당선될것이라고 생각되기엔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연설과 열정으로 경선 내내 진심으로 임했다.
중간 중간 위협이 있었으나, 정치인 팬클럽
일명 "노사모"와 함께 그러한 역경들을 헤쳐나갔다.
2003년, 노무현 후보가 48.9%를 얻으면서 대통령 후보에 당선되었다.
노무현은 일명 "참여정부"를 이끌게되었다.
최초로 탄핵소추를 받는 대통령이기도하였지만,
그러한 고난을 해쳐나가기도하였다.
일명 작전통제권 연설로
한국의 주권과 군사적 능력을 강구하는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아직도 노무현이 연설하는 그 모습을 보고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또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그는 자신의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저양반은 대통령 할때보다 안할때 더 유명하네"
라는 이야기까지 돌았을 수준으로 그의 인기는 높았다.
그만큼 탈권위주의적이고, 시민과 함께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를 가만히 두지않았다.
그의 친,인척의 실수를 그에게 갖다붙혔으며,
그를 망신주기 시작했다.
결국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안타까운 선택을 택한다.
많은 국민들이 슬픔에 빠졌다.
서울,충청,강원,전라 여러곳에서 온 시민들이
봉하마을로 와서 추모하였다.
그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는 시민들은 아직도 봉하마을을 찾는다.
각각 이유는 다르다.
인간 노무현의 온기를 찾는 사람들.
대통령 노무현의 능력을 기억하는 사람들.
노무현과 함께했던 사람들...
다 이유는 다르지만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을 추모하기위해
봉하마을에 모여, 다함께 추모한다.
오늘 2021년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12주기이다.
그가 꿈꾸었던 세상,
노무현의 세상은 아직 완성되지않았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는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나가야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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