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과 빌헬름 2세의 실책들
소년데드풀
·2021. 5. 17. 21:35
19세기 후반, 세계정세는 요동치고있었습니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서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이 지속적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이를 견제하기위한 러시아의 대립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특히 당시 독일의 수상이였던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의 극심한 대립속에서,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켜야하는 과제를 위해,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독일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러시아제국일명 삼제동맹을 체결한것입니다.
이는 당시 발칸반도의 대립에서
독일이 주도적으로 그들 사이를 중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동맹은 지속적인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과 러시아간의 관계악화로인해 깨어집니다.
당시 독일은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적으로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다시한번 삼국동맹을 체결합니다.
이에, 독일제국은 러시아의 일정부분 보장이 필요했고,러시아 역시 그러했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을 공격할시에, 러시아의 중립을.오헝제국이 러시아를 공격할시에,독일의 중립을.러시아가 오스만을 공격할시에 독일의 중립을.
이라는 부분에대해 서로 상호 합의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약은 기존 질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독일입장에서는 프랑스라는 위험을 배제할수있었기에,
국익에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리한 조약이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조약은 오랫동안 유지되지못하였습니다.
국익을 고려한 러시아가 조약을 취소한걸까요?
아니면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취소한걸까요?
아닙니다. 독일에서 제일 무능했던 지도자이자
멍청하면서도 사생활마저도 쓰레기같았던
바로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가 주도하여 이러한 조약을 끊어냈습니다.
이유는 근거없는 자신감이였습니다.
당시 독일 통일 이후 세대들은독일이 무엇이든 가능할것이라는쓸모없는 망상질을 해대었고,
그러한 세대의 대표자인 "빌헬름 2세"가 황제자리에 올랐으니 독일의 국제외교는 아주 작살이났습니다.
심지어 일명 "세계정책"을 펼치며상당히 공격적인 식민지 정책을 주도하였는데
당연히 영국과 독일의 외교관계는 파탄이 나고, 러시아와의 관계도 말할것도 없었죠.
러불동맹이 체결되고,
영국과 러시아가 서로의 식민지와 일부 패권을 인정하면서일명 영불 협상이 이뤄집니다.
당시 이집트에서의 영국의 패권을 프랑스에게 인정받고,모로코에서의 프랑스의 패권을 영국에게 인정받았는데.
생각없는 군주 빌헬름 2세는 모로코에 가서프랑스를 자극할만할 행동과 언행을 합니다!
안그래도 영불협상이 체결되고
러불동맹이 형성되면서
독일이 위기에 쳐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짓이라곤 영불협상을 강화하는
쓸모없는 행위를 한것입니다!
심지어 세계정책의 일환으로 오스만과
독일을 잇는 철도계획을 펼쳤는데,
당연히 아시겠지만
이는 영국과 러시아 모두를 자극하는 행위였습니다!
결국 고립된 프랑스는 고립에서 벗어났고,
영불협상 영러협상이 차례로 치뤄지면서,
오히려 독일이 양면전선에 둘러싸이게됬습니다!
심지어 이후에
근본없는 근거없는 독일의 자신감은 지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러시아를 자극하는것을 대놓고 허락하고,
영국이 중립을 지켜달라고 요구한
벨기에를 무시하고 국경을 침범해버립니다.
즉 독일은 국익이아니라
쓸모없는 국뽕과 통일 이후 세대들의 상상의 꿈나래
덕분에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됩니다.
세계 1차 대전의 결과를 다들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독일은 패전했고, 여태껏 쌓아온 대부분의 것들을 잃습니다.
심지어 빌헬름 2세의 세계정책은 식민지 정책에
엄청난 공과 돈을 들였지만 정작 성과는 없었고
세계 1차 대전 이후 모든 식민지를 사실상 박탈당합니다.
이후의 독일의 상황은 제가 일전에 쓴,
히틀러가 당선된 배경과 과정들에서 확인할수있을듯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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