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화, 어떻게 진행된 걸까요?
소년데드풀
·2021. 2. 23. 14:15
1948년, 8월 15일, 드디어
1919년 3월 1일의 독립운동이후,
그리고 4월 11일의 임시정부의 수립 이후
대한민국의 정식으로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당시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당선되는데요.
이후 여러 6.25전쟁 당시의 발췌개헌과 같이
이승만 정권은 장기집권을 추구하였는데요.
이에 더불어 사사오입 개헌까지 하자,
국민들의 여론은 이승만에대한 반대여론이 커지게됩니다.
그러자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를 일으키는데요,
당시 상대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이 사망상태였기때문에
대통령 선거는 문제가 없었지만,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이 이기도록하기위해
각종 금권선거, 부정선거를 통해
자유당 후보인 이기붕을 당선시킵니다.
이러한 부정선거를 국민이 모를레야 모를수가없었고,
시민과 학생들은 대규모로 시위로 거리에 나서게되었습니다.
특히 마산에서는 경찰의 발포로 9명이나 되는 시민이 사망하고
여러명이 부상입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사건이 바로 마산 3.15의거인데요,
이러한 마산 3.15의거로 사망한 김주열군의 시신이
4월 11일에 마산부두 앞에 떠오르고,
마산에서 2차 시위가 벌어지고,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고,
이는 전국적으로 퍼지게됩니다.
4월 19일,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지자,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이 강압적인 탄압을 벌이자,
전국적으로 100명의 시민들이 사망하게됩니다.
그러자 여론은 물론, 미국마저 등을 돌리게되었습니다.
결국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선언을 하고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하는 장면 내각이 구성됩니다.
그러나 장면 내각은 박정희를 주도로 한
5.16쿠데타에 의해 몰락하게됩니다.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시민들은
굴욕적인 한일협정에대한 반대시위와
대통령 3선 개헌에대한 반대 시위로
민주화 시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갔습니다
더불어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반 유신 투쟁을 벌입니다.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유신정권과 독재정권에대한 반항을 이어나갔습니다.
10월 26일 김재규의 총탄에 박정희가 사망하고
서울의 시민들은 일명 "서울의 봄"이라는 장기적 시위를 이어나가고,
대 정부 투쟁을 시작하게됩니다.
그러나 박정희 군부가 몰락하였더라도,
전두환을 필두로한 신군부가 탄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위는 서울역 회군이라는 사건으로,
좋은 결과를 얻지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광주의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항의했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집니다.
이사건으로 광주의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최악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의 학살이후,
민주화운동이 진압되기는 커녕,
더욱 더 거세졌습니다.
이러한 민주화운동은,
많은 시민들이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체를 알게되며
더더욱 강한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민주화운동은, 6월 항쟁이됩니다.
당시 종교계 역시 동참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은 민주국가가 되었고,
민주화가 이뤄집니다.
이러한 민주화운동은 외국의 개입없이,
우리 국민에의해 자주적으로 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의 매우 고무적인일입니다.
또한, 이러한 대한민국의 결과는,
민주화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민주의식을 보여줍니다.
제일 대표적인 예시가 우리나라의 촛불시위와같은,
결과를 볼수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저 방안에 앉아있는다고 이뤄지지않았습니다,
거리에서 이뤄졌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많은 민중들의 희생으로 이뤄졌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누리고있는 우리는,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해야만할것입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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