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정말로 선거로 당선된걸까요?

소년데드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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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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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총통, 히틀러

여러분은 히틀러를 생각하면 뭐가떠오르나요?

세계2차대전, 유대인 학살, 등등... 여러가지가 떠오르시겠지만

 

일각에선 "히틀러는 민주주의의 실패작의 대표적인 예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요?

 

히틀러는 민주주의적으로 "정당하게" 집권하지 못했습니다.

두가지 방법 모두 실패했죠

 

국회에서 과반을 얻지도 못했고요,

대통령으로서 선거에서 승리하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당시의 시민들의 문제도 있었지만,

동시에 당시 독일 정치인들의 무능에도 있습니다.

 

심지어, 제1당이 된 이후에도 제대로된 모습을 보이지못해

지지율이 하락해 1932년 11월 선거에서 37.2%의 득표율에서

33.1%로 득표율이 낮아지기까지 했죠,

 

근데 어떻게 집권하였을까요?

당시 독일은 대공황으로 여러 경제적 혼란을 가지고있었는데요,

브뢰닝 총리

당시의 정/재계에서 브뢰닝 총리에대한 지지나 인기는 낮았고,

결국 마땅한 정책을 내지못한 브뢰닝 총리는 지속적으로 정/재계에서 비난받았습니다.

파펜 총리

그 이후 파펜이 총리가 되는데요, 당시 재계에서 요구하던

"실업자의 복지정책 대폭 삭감"을 실행했는데요,

재계의 지지는 받을수있었지만, 대 국민적 지지는 오히려 비난으로 바뀌었죠

 

결국 사민당에의해 내각 불신임안이 국회에서 511:42라는 결과로

불신임 당하게됬습니다,

 

또한 결국 슐라이허에게 총리직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파펜의 후임이 된 슐라이허 총리
힌덴부르크 대통령

그러나, 파펜은 힌덴부르크에게 큰 신임을 받고있었기에,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영향력은 나름 있었습니다.

 

또한 파펜은 힌덴부르크에게 히틀러를 총리로 하자는 건의 까지했죠,

그러나 힌덴부르크는 당시 히틀러를 신임하지않았고, 나치당 역시 신임하지않았습니다.

 

그러나 파펜은 지속적으로 자신이 히틀러를 통제하에 둘수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재계의 지지를 얻기위해 히틀러에게 몇몇 약속을 받고,

경제적 전권을 당시의 경제적으로

재계와 우익으로부터 지지받던 후겐베르크에게 넘기자는 제안을 합니다.

 

또한 파펜 자신을 부총리로 하여.

당시 파펜은 히틀러가 얼굴마담만하고, 실권을 가질수없을것이라고 생각한거죠.

 

심지어 당시의 파펜은 슐라이허를 총리자리에 끌어 내리기위해

여러가지 정치적 공작을 시행하기까지했습니다.

 

결국 파펜의 요구대로 히틀러는 총리에 임명되었고,

부총리로는 파펜이 결정되었죠.

 

즉 히틀러는 자신이 원하는 권력의 중심인

총리로 임명되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것도,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한것도 아니였죠.

 

또한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독일 사민당과 공산당을 탄압하기 시작하였고, 나치 친위대와 돌격대를 보조경찰로 임명해,

그들을 탄압하고 총기를 통해 사살할수있게까지 했습니다.

 

즉 정권을 지키기위해 일종의 중국 홍위병과같은것을 만든것이라고 생각할수있겠습니다.

 

이때 심지어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당시 독일 국회의사당에 큰 화재가 납니다.

당시 판 데르 루페가 방화범으로 잡히게되었는데요,

 

이것이 히틀러가 불을 낸것이다, 혹은 진짜 판 데르 루페가 불을 낸것이다.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괴벨스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히틀러는 이사건을보고

"독일의 볼셰비키(공산주의자들을 뜻함)들이 혁명을 일으킬것이다!"라고 까지

두려워 하기까지 했다고들 하는데요,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그가 연기를 한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과 관계없이, 히틀러는 이 사건의 진범을 사민당으로 지정했고,

국가보위라는 핑계로 여러가지 이유로 큰 권한을 가지게됩니다.

 

또한, 그 이후 총선거가 이뤄지는데요, 그는 1500명이 넘는 공산당 간부들과

국회의원들까지 체포했고요,

 

심지어 당시의 나치 돌격대원들이 보조 경찰로 임명된만큼

그들이 선거당일때 까지 각종 테러를 저질러,

50명이 넘은 공산당 지지자들이 살해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근데 나치당에 유리하고 나치 돌격대의 협박에의한

총선거에도 불구하고, 89%의 투표율의 결과로,

 

나치당은 과반을 얻지못하고

43.9%의 득표율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나치가 총과 칼, 그리고 각종 언론을 장악하면서까지

독일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협박하였어도, 결국은 과반수 이상의 지지율은

얻지못했다는것을 알수있는거죠.

 

또한 총선 이후 전권 위임법이 통과 되는데요,

심지어 이당시의 의회에서 과반수를 얻지못한 히틀러와 나치당이 어떻게

이것을 통과시킨것일까요? 당시 3분의 2이상이 출석하고, 3분의 2가 동의해야하는데요,

 

당시 국회 인원은 647석, 그리고

사민당과 공산당의 의석수는 201석이였고,

국회의 15명만 설득한다면, 무산시킬수 있었는데요,

 

근데 나치당과 히틀러는 "무단으로" 국회에 오지않은사람은

출석하고, 기권표를 낸것으로 따진다고 유권 해석까지 하였죠.

 

또한 당시 공산당의원들은 체포당하거나 은신해있거나,혹은

이미 피난가있는 상태였죠. 이렇게 81명의 의원들은 "무단으로" 오지않은것이되고

 

전권위임법은 결국 히틀러와 나치당이 우파정당들을 협박하고 매수하면서

결국 찬성 444대 반대 94로 통과되기까지 합니다.

 

또한, 당시 반 히틀러의 주된 세력이였던 사민당을

불법 정당으로 규정하여 탄압했습니다.

 

이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후,

일종의 홍위병으로 비유 드렸었는데요, 나치 돌격대가 국제적으로 지속적으로 비난받자

히틀러는 돌격대를 눈엣가시로 봤지만,

나치 돌격대의 수장 에른스트 룀

 

당시 돌격대의 수장인 에른스트 룀은

눈치없게도, 돌격대를 정규군으로 편입하자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기까지하죠.

 

이는 당연히 안그래도 눈엣가시로 봤던 히틀러는

더더욱 돌격대를 눈밖에 두게되죠

 

이후 파펜은 공개적으로 나치당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였는데요,

파펜의 연설 이후 군부와 협력해.

 

에른스트 룀과 각종 세력의 경쟁자들, 정적들을 대규모 숙청하였습니다

 

결국 이사건은 독일 군부가 히틀러에게 복종하게 되었고,

히틀러는 정치적 위협이 될수있는 경쟁자, 정적들을 숙청하였죠.

 

이를 "장검의 밤"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히틀러는 각종 권력을 장악한것이죠.

 

이후 자신의 총리직과 힌덴부르크의 죽음으로 공석이된 대통령직을 합치는

국민투표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각종 권력을 이미 장악한 히틀러는 막강했죠,

결국 부정선거와 여러 반대세력에대한 무자비한 테러로.

 

히틀러는 90%의 찬성으로 절대권력자 "총통"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글을 잘 보셨나요?

물론 선거를 통해 일종의 세력이된 나치당과 히틀러를 보고

물론 국민에게 역시 탓이 있겠지만,

 

당시 정치인들의 탓 역시 있다는것을 알수있으시겠죠?

 

이 글은 제가 그냥 쓴게 아니라요,

요즘 세계사와 관련된 정보를 많이 공유중인

 

"함께하는 세계사" 채널의 독일 현대사 시리즈의

히틀러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함께하는 세계사" 채널을 많이 보고, 구독도 해주시고요,

제 블로그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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